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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반도체 산업은 미세화 경쟁을 통해 집적도를 높여 왔지만, 공정 한계와 물리적 제약에 직면하면서 ‘더 작게’가 아닌 ‘더 입체적으로’라는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칩을 위로 쌓고, 서로 다른 기능을 분리해 다시 연결하는 3D 집적과 칩렛(chiplet) 기반 설계는 이제 차세대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구현되기까지는 공정 신뢰성, 열 문제, 수율, 패키징 기술 등 복합적인 난제가 뒤따른다.
인하대학교 반도체공학과 최리노 교수는 3D 집적 기술과 신소재 기반 메모리·트랜지스터 연구를 중심으로, 소자 구조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을 모색해온 연구자다. 그는 단순히 소자의 성능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 트렌드를 산업 맥락 속에서 해석하며 미래 반도체의 구조적 전환을 설명해왔다. 미세화 이후의 시대, 반도체는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야 하는가. 3D 집적과 차세대 소자 기술은 산업의 판을 바꿀 수 있을까. 반도체 소자의 미래를 설계하는 연구자, 최리노 교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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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교수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하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이자 3D 나노융합소자연구센터(3DC2) 센터장을 맡고 있는 최리노입니다. 저는 차세대 반도체의 성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공정 소자, 적층 기술과 공정 혁신을 연구하며, 미래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갈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Q. 교수님이 지금까지 이루신 학문적 성취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Q. 반도체 산업에 관심을 가지고 뛰어드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시작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석사 후 대우자동차에서 5년간 근무하던 중, IMF라는 국가적 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미국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유학 당시 이미 가정을 이룬 상태였기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미국 내에서 취업이 가장 잘 되는 분야를 공부해야 했습니다. 당시 UT 오스틴은 반도체 연구의 메카였고, 자성 재료 연구로 시작하려던 계획을 바꿔 반도체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저를 이 거대한 산업의 중심으로 이끈 셈입니다.
Q. 그렇다면 반도체라는 거대한 산업에서 지금의 연구 분야를 선택하시게 된 동기도 궁금합니다.
제가 이 분야(3D 집적 및 하이브리드 본딩)에 매진하게 된 계기는 '스케일링의 물리적 한계'와 '에너지 효율'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벽을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학업 초기에는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게이트 절연막을 SiO2에서 High-k 소재로 바꾸고, 소자의 신뢰성(NBTI, PBTI 등)을 개선하는 전공정 연구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단순히 소자 하나를 작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성능 향상과 전력 소모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데 한계가 왔음을 직감했습니다. 특히 기업체에서 핀펫이나 GAA 같은 복잡한 구조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며, '이제는 소자 단위를 넘어, 어떻게 이들을 효율적으로 쌓고 연결할 것인가'가 미래 반도체의 핵심이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반도체의 본질은 결국 '최고의 성능을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인데, 현재 AI 시대의 가장 큰 걸림돌은 막대한 전력 소모와 데이터 병목 현상입니다. 저는 '백엔드 라인의 길이를 혁신적으로 줄여 저항과 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AI 사회를 만드는 열쇠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학교라는 연구 환경에서 가장 창의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분야인 '3D 인테그레이션'과 그 핵심 기술인 '저온 하이브리드 본딩'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미세화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전체 시스템의 밀도와 효율을 높이는 '연결의 정밀도'를 높여보자는 결심이 지금의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최리노 교수는 반도체 백엔드 라인의 길이를 혁신적으로 줄여 저항과 열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을 모색해왔다. [사진제공=최리노]
Q. 수많은 반도체 기술 중에서도 교수님의 연구만이 갖는 매력이 있을까요?
'물리적 한계의 정면 돌파'입니다.
이제는 전공정에서 소자 크기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성능 향상이 어렵고 전력 소모나 발열 같은 부작용이 더 커지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제 연구는 소자를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쌓고, 그 사이의 거리(Interconnect Length)를 극단적으로 줄임으로써 물리적 한계에 부딪힌 반도체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입니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벽을 '연결의 방식'을 바꿔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Q. 교수님의 연구가 국내외 반도체 산업이나 기술 발전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설명해주세요.
현재 반도체 산업의 화두는 단연 'HBM(고대역폭 메모리)'과 'AI 가속기' 등을 위한 I/O의 확장입니다. 제 연구는 I/O의 확장의 핵심 공정인 3D 인테그레이션과 하이브리드 본딩의 필요 기술의 개발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존의 솔더볼 방식이 아닌 구리와 구리를 직접 붙이는 방식으로 변화하여 BEOL의 길이를 줄여서 데이터 전송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이고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낮춥니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기술적 초격차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 기술이며,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를 하나로 묶는 이종 집적 기술의 완성도를 높여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Q. 지난 2~3년간 연구실에서의 마일스톤 중 가장 의미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을까요?
가장 큰 자부심을 느끼는 성과는 국내에서 최초로 '모놀리틱 3D' 기술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이를 뒷받침할 핵심 저온 공정 기술들을 개발해낸 것입니다.
모놀리틱 3D는 기존의 적층 방식과 달리 하부 소자 위에 상부 소자를 직접 순차적으로 제작하는 방식으로, 집적도를 극대화할 수 있지만 하부 소자의 손상을 막기 위한 엄격한 저온 공정이 필수적입니다. 저희 연구실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저온 소재 및 공정 레시피를 개발하며 국내 연구 지평을 넓혔습니다.
또한, 최근 반도체 패키징의 핵심으로 떠오른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에 대해 국내 연구계와 산업계의 주의를 환기하고 연구의 필요성을 앞장서서 전파한 것도 매우 의미 있는 마일스톤입니다. 기술적 전환기에 선제적으로 화두를 던지고, 실제적인 연구 데이터를 제시함으로써 후속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개별 기술의 성공을 넘어, 대한민국 반도체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차세대 적층 기술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지난 2~3년은 연구 인생에서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연구실 멤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에서 5번째가 최리노 교수 [사진제공=최리노]
Q. 그렇다면 앞으로 5년 내 이루고자 하는 연구 목표가 있으실까요?
단순히 쌓는 것을 넘어, '3D 인테그레이션의 정밀도와 밀도'를 극대화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하이브리드 본딩의 피치 사이즈를 200나노미터(nm) 수준까지 낮추는 공정 기술을 완성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단순히 웨이퍼 단위의 결합을 넘어, 서로 다른 공정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다이(Die)들을 3차원으로 겹쳐 디바이스 집적 밀도를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습니다. 이는 성능과 가격, 그리고 전력 효율이라는 반도체의 세 가지 난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입니다.
Q.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연구 목표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일상 혹은 산업 일선에서 어떤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현재 AI 기술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막대한 '에너지 소모와 전력 파워' 문제입니다. 제 연구가 완성되면 interconnect 라인의 길이를 혁신적으로 줄여 저항에 의한 파워 손실과 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AI 러닝 속도는 훨씬 빨라지고, 소모되는 전력은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산업 현장에서는 에너지 효율이 극대화된 '지속 가능한 IT 환경'이 구축될 것이며, 우리 일상에서는 배터리 걱정 없이 강력한 AI 기능을 수행하는 초소형 기기들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결국 기술이 환경과 공존하며 인류의 지능을 확장하는 시대를 보게 될 것입니다.
→ 이어질 2편에서는 교수님의 주요 연구 분야에 대한 추가 인터뷰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현재와 미래, 인재 육성과 정책 방향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통찰을 전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