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공계 리더를 만나다 1편: 인하대학교 신소재공학과 최리노 교수]
[이공계 리더를 만나다 2편: 인하대학교 신소재공학과 최리노 교수]
[이공계 리더를 만나다 3편: 명지대학교 반도체공학부 홍상진 교수]
[이공계 리더를 만나다 4편: 명지대학교 반도체공학부 홍상진 교수]
[이공계 리더를 만나다 5편: 세미파이브 박원효 상무]
[이공계 리더를 만나다 6편: 세미파이브 박원효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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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를 둘러싼 산업의 흐름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 반도체 경쟁의 핵심이 더 미세한 공정, 더 빠른 칩, 더 낮은 전력 소모에 있었다면, 이제는 연산 칩과 메모리, 패키징, 소프트웨어, 데이터센터 전력 효율까지 모두 연결해 바라보는 시스템 경쟁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AI 반도체에서는 GPU와 ASIC, HBM, 칩렛, 2.5D·3D 패키징, 열 관리, 테스트, 양산 검증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함께 논의된다. 칩 하나를 잘 설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실제 서비스와 고객 요구, 전력 효율, 원가, 양산 가능성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AI ASIC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세미파이브의 박원효 상무를 만나,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변화와 AI 반도체 트렌드, 정부 정책의 과제, 그리고 이공계 취업준비생들이 준비해야 할 역량에 대해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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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5편에서 이어집니다.
Q. 지금 반도체 산업의 가장 큰 구조적 변화를 꼽으신다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산업의 판 자체가 바뀌고 있는 흐름이 궁금합니다.
제일 큰 변화는 반도체 산업이 더 이상 단품 칩 경쟁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경쟁으로 바뀐 데 있습니다.
과거, 아니 최근까지도 얼마나 미세한 공정으로, 얼마나 빠르고 전력 효율 좋은 칩을 만드느냐가 핵심이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AI 시대에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는 연산 칩, 메모리, 패키징, 소프트웨어, 데이터센터 전력 효율까지 모두 연결해서 봐야 합니다.
특히 AI 반도체는 로직 칩 하나만 잘 만든다고 끝나는 산업이 아닙니다. HBM을 어떻게 붙일 것인지, 칩렛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2.5D·3D 패키징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열을 어떻게 빼낼 것인지가 성능과 원가를 좌우합니다. 전략적인 부분, 특히 증권가의 2026년 반도체 전망에서는 HBM이 로직 칩렛 가까이에 통합되는 방향, 즉 인터포저나 3D 스택 구조가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의 구조적 변화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공정 중심에서 시스템 통합 중심으로의 변화입니다.
둘째, 범용 칩 중심에서 고객 맞춤형 칩 중심으로의 변화입니다.
셋째, 반도체가 기업 경쟁을 넘어 국가 전략산업이 되는 변화입니다.
이제 반도체는 기술 산업이면서 동시에 안보 산업이고, 인프라 산업이고, 국가 경쟁력이면서 우리의 중요 자원이 되었습니다.
Q. GPU 중심의 범용 AI 칩에서 ASIC 기반 맞춤형 AI 칩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GPU는 AI 시대를 연 핵심 기술입니다. 특히 학습 영역에서는 여전히 GPU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AI가 실제 서비스로 확산되면서 상황이 조금 달라지고 있습니다. AI 서비스가 많아질수록 기업들은 최고 성능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력, 비용, 지연시간, 서비스별 최적화를 함께 보게 됩니다. 이때 범용 GPU는 강력하지만, 모든 서비스에 가장 경제적인 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LLM 서비스, 추천 시스템, 영상 처리, 엣지 AI, 데이터센터 추론처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워크로드가 명확하다면, 그 용도에 맞춘 ASIC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GPU가 성능 좋은 범용 스포츠카라면, ASIC은 특정 노선에 최적화된 고속열차에 가깝습니다.
AI가 연구실에서 데이터센터와 실제 제품으로 내려오면서 중요한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이게 잘 돌아가느냐?”에서 “얼마나 싸게, 얼마나 적은 전력으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돌리느냐?”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GPU와 ASIC은 서로 대체 관계라기보다 역할이 나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학습과 범용성은 GPU가 강하고, 대규모 추론과 특정 서비스 최적화는 ASIC이 강해질 것입니다.

렛유인 직원에게 세미파이브에서 설계한 AI반도체를 설명하고 있는 박원효 상무(보안상 블러 처리) [사진제공=렛유인]
Q. AI 반도체에서 빅다이, HBM, 3DIC가 함께 논의되는 이유가 뭔가요? 이 세 가지가 왜 세트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지 취업준비생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AI 반도체를 아주 쉽게 설명하면, 엄청나게 많은 계산을 아주 빠르게 해야 하는 칩입니다. 그런데 계산 능력만 키운다고 성능이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계산할 데이터를 계속 공급해줘야 합니다.
여기서 세 가지가 같이 등장합니다.
첫째, 빅다이입니다. AI 연산을 많이 하려면 많은 연산 유닛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칩 크기가 커집니다.
둘째, HBM입니다. 연산 유닛이 아무리 많아도 데이터를 느리게 가져오면 성능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아주 넓은 대역폭으로 데이터를 공급하는 HBM이 필요합니다.
셋째, 3DIC 또는 고급 패키징입니다. 빅다이와 HBM을 물리적으로 아주 가깝게 붙여야 데이터가 빠르게 이동하고 전력도 줄일 수 있습니다.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빅다이는 큰 공장입니다. HBM은 원자재 창고입니다. 3DIC는 공장과 창고를 바로 붙여주는 고속 컨베이어벨트입니다. 공장이 아무리 커도 원자재가 늦게 들어오면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AI 반도체에서는 연산 칩, 메모리, 패키징이 따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실제로 최근 업계 전망에서도 AI 반도체의 핵심 병목으로 HBM과 고급 패키징이 계속 언급되고 있으며, HBM 수요 급증으로 공급 부족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Q. 현장에서 체감하는 지금 반도체 산업의 온도는 어떻습니까? 미디어에서 보도되는 것과 실제 판이 다른 부분이 있다면요?
신문, 방송, SNS에서는 반도체를 굉장히 뜨겁게 이야기합니다. 주가를 보면 그것도 이해가 가긴 합니다. AI, HBM, 데이터센터, 국가 전략산업 같은 키워드가 많이 나옵니다. 실제 현장도 뜨거운 것은 맞습니다.
다만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겉으로 보면 수요가 폭발하는 산업처럼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병목이 굉장히 많습니다. 선단 공정 캐파, HBM 공급, 고급 패키징 캐파, 기판, 전력, 인력, 설계 검증 리소스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느 하나만 준비된다고 제품이 나오는 구조가 아닙니다. 또 하나는 AI 반도체가 뜬다는 말은 맞지만, 모든 회사가 다 쉽게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AI 반도체는 설계 난이도도 높고, 검증 비용도 크고, 양산까지 가는 데 필요한 생태계도 복잡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체감하는 실제 분위기는 이렇습니다. 기회는 분명히 큽니다. 하지만 동시에 실행력이 없는 회사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이디어보다 실행, 발표보다 양산, 기술 주장보다 검증 데이터가 더 중요합니다. 실제로 양산 칩을 갖고 실전에 뛰어드는 회사들이 반드시 차별화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Q. 지금 반도체 업계에서 간과되고 있지만, 앞으로 3~5년 안에 반드시 주목받게 될 기술이나 이슈가 있다면 뭐라고 보시나요?
저는 패키징, 테스트, 열 관리, 그리고 설계-공정-패키지 공동 최적화를 더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많은 취준생들이 반도체라고 하면 회로설계, 공정, 소자만 먼저 떠올립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AI 반도체 시대에는 칩을 잘 설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칩을 어떻게 패키징할지, HBM과 어떻게 연결할지, 열은 어떻게 처리할지, 테스트는 어떻게 할지, 수율은 어떻게 확보할지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특히 3DIC에서는 문제가 더 복잡합니다. 위아래 칩을 쌓으면 전기적 연결뿐 아니라 기계적 스트레스, 열, 정렬 정확도, 신뢰성 문제가 모두 같이 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단순히 “나는 회로만 안다”, “나는 공정만 안다”로는 부족합니다. 앞으로 3~5년 안에 경쟁력 있는 엔지니어는 자기 전문성을 가지면서도 옆 분야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반도체 엔지니어의 시스템화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요즘 제가 주로 하는 강의 내용이 어드밴스드 패키지, HBM인데, 이 내용에는 전공정의 모든 프로세스가 포함되어 있어 굳이 나눠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갖고 있습니다.
Q. 최근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명 「반도체 특별법」이 제정되어 올해 8월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만 뜨거운 쟁점이었던 연구인력의 주52시간제 적용 여부는 이 법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상무님의 생각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먼저 반도체 특별법 자체는 매우 의미 있지만, 현업에서 볼 때는 최적화해야 하는 여러 난제가 보입니다.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용수·도로 같은 기반시설, 인허가, 재정·행정 지원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다루겠다는 방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실제 이번 법에는 반도체 클러스터 지정, 기반시설 확충, 예비타당성 조사 특례, 대통령 소속 특별위원회 설치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R&D 인력의 주52시간제 예외 조항이 빠진 부분은 현장 입장에서 아쉽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더 오래 일하자는 것이 아니라, 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간을 목적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반도체 개발은 특정 시점에 업무가 집중되는 산업입니다. Tape-out, bring-up, silicon debug, customer delivery 직전에는 시간의 연속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물론 근로자의 건강과 삶의 균형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고, 원칙은 지켜야 합니다. 다만 글로벌 경쟁을 하는 첨단 R&D 영역에서는 획일적인 시간 규제보다는 선택권과 보호장치를 함께 갖춘 유연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피크 구간에 한해 제한적으로 유연성을 주되, 사전 동의, 건강 보호, 보상, 휴식 보장, 사후 관리가 함께 가야 합니다.
반도체는 속도가 경쟁력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소모품처럼 쓰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결국 답은 무제한 노동이 아니라 책임 있는 유연성으로 봐야 합니다.

박원효 상무는 반도체 R&D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근로자 보호를 전제로 한 ‘책임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진제공=렛유인]
Q. 국가에서 반도체를 국가 핵심산업으로 지정하면서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지원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어떠한 규제나 병목현상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지원금의 규모보다 속도와 실행력입니다. 반도체 산업은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시장 창이 열렸을 때 제품이 나와야 합니다. 1~2년 늦으면 기술은 있어도 사업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 지원도 단순히 예산을 배정하는 데서 끝나면 안 되고, 실제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속도로 이어져야 합니다. 제가 보는 병목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인허가와 인프라 병목입니다. 반도체 팹과 클러스터에는 전력, 용수, 부지, 환경 인허가가 필수입니다. 이 부분이 늦어지면 아무리 투자 의지가 있어도 진행이 어렵습니다.
둘째, 인력 병목입니다. 반도체 인재는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설계, 검증, 패키징, 공정 통합 인력은 현장 경험이 중요합니다.
셋째, 중소·중견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 생태계, 그리고 렛유인 같은 교육자원에 대한 지원입니다. 대기업만으로는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IP, EDA, 설계 서비스, 패키징, 테스트, 그리고 이들을 양성하는 교육까지 연결되는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넷째, 글로벌 고객과 연결되는 실증 기회입니다. 정부 지원이 연구 과제로만 끝나지 않고 실제 양산, 고객 검증, 해외 진출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결국 정책의 목표는 정책 자원 소비가 아니라 “반도체 제품이 나왔다”, “고객을 확보했다”, “생태계가 커졌다”가 되어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인재 역량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상무님이 지금 신입이나 주니어 엔지니어를 채용하신다면, 가장 먼저 어떤 역량을 보시나요? 스펙보다 중요하게 보시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가장 먼저 문제를 끝까지 파고드는 태도를 봅니다. 신입에게 처음부터 모든 기술을 알 것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반도체는 워낙 넓고 깊은 산업이라 입사 후에도 계속 배워야 합니다. 다만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 그냥 멈추는 사람과, 스스로 찾아보고 질문하고 정리해서 다시 도전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큰 차이가 납니다. 스펙도 중요합니다. 기본 전공 지식, 프로젝트 경험, 툴 사용 경험은 당연히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 기본기를 정확히 이해하려는 태도입니다.
둘째, 데이터와 근거로 말하는 습관입니다.
셋째, 협업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입니다.
넷째, 자기 일을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입니다.
반도체 개발은 혼자 천재처럼 하는 일이 아닙니다. 회로, 레이아웃, 검증, 공정, 패키지, 테스트, 고객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실력이 뛰어난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오래 성장합니다.
Q. AI 시대에 반도체 엔지니어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역량이 생겼다고 보시나요? 기존에 중요했던 것 중 지금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진 것도 있을까요?
새롭게 요구되는 역량은 분명히 생겼습니다. 저는 크게 세 가지를 봅니다.
첫째, 시스템 관점입니다. 이제는 회로 하나, 블록 하나만 보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칩이 어떤 AI 모델을 돌리는지, 메모리 병목은 어디인지, 패키징 구조는 어떤지, 전력과 열은 어떻게 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둘째,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입니다. 반도체 엔지니어가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AI workload가 어떤 특성을 갖는지, 데이터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병목이 어디서 생기는지는 이해해야 좋은 하드웨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셋째, 자동화와 AI 도구 활용 능력입니다. 앞으로 설계와 검증에서도 AI 기반 도구가 더 많이 들어올 것입니다. 단순 반복 업무는 줄어들고, 엔지니어는 더 높은 수준의 판단과 검증을 해야 합니다.
반대로 덜 중요해진 것은 암기형 지식입니다. 예전처럼 특정 공식이나 툴 명령어를 많이 외우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되기 어렵습니다. 지식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특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이에 대한 전체적 이해력이 매우 중요해졌고, 새로운 요구 역량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Q. 세미파이브에서 활약하는 회로설계 엔지니어가 되려면 입사 전 이것 하나만큼은 반드시 가져야 할 경험이나 스펙은 어떤 게 있을까요?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작은 블록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설계해 본 경험을 말하고 싶습니다. 꼭 대단한 칩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작은 디지털 블록이라도 좋고, 아날로그 회로라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펙을 정의하고, RTL 또는 회로를 만들고, 시뮬레이션하고, 검증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디버깅해 본 경험입니다.
회로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그릴 줄 안다”가 아니라 “검증하고 설명할 수 있다”입니다. 왜 이런 구조를 선택했는지, 타이밍은 어떻게 맞췄는지, 전력은 어떻게 고려했는지, corner case는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미파이브 같은 회사는 고객의 요구사항을 실제 칩으로 구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교과서 지식만 있는 사람보다는, 작더라도 실제 설계 플로우를 경험해 본 사람이 훨씬 빠르게 성장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Verilog/SystemVerilog, 기본적인 timing 개념, scripting 능력, EDA tool 경험이 있으면 좋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만든 설계를 끝까지 책임져 본 경험”입니다.

박원효 상무는 작은 설계라도 스펙 정의부터 검증·디버깅까지 끝까지 책임져 본 경험이
회로설계 엔지니어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사진제공=박원효]
Q. 오늘 나눠주신 이야기들이 이 인터뷰를 보게 될 이공계 취업준비생들에게 큰 울림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공계 취준생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반도체는 어렵습니다. 요즘 핫하다고 매체에서 많이 이야기하다 보니 보상에 대한 부분만 부각되는데, 이 분야는 공부해야 할 것도 많고, 처음에는 용어도 낯설고, 산업 구조도 복잡합니다. 그래서 취준생 입장에서는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반도체 산업은 다시 한 번 큰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AI, HBM, 3DIC, 칩렛, 고급 패키징, 시스템 반도체가 모두 새롭게 열리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는 정답을 외운 사람보다 배우고 적응하는 사람에게 더 큰 기회가 옵니다.
취준생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본기를 피하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대신 끝까지 배우고, 질문하고, 직접 해보는 사람이 되십시오. 반도체는 혼자 하는 산업이 아닙니다. 좋은 엔지니어는 좋은 동료이기도 해야 합니다. 기술을 깊게 공부하되,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도 같이 배워야 합니다. 앞으로 AI 반도체 시대에는 한국의 젊은 엔지니어들에게 정말 많은 기회가 올 것입니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스펙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기본기, 태도, 책임감, 그리고 끝까지 해내는 힘입니다.
렛유인처럼 많은 경험과 기회가 있는 곳에서 구르며 자신의 흔적들을 더 견고히 하십시오. 저도 현장에서 그런 인재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